人間/대학생이알아야할것

하나,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낼까?

까만돌2 2008. 8. 25. 00:16

01. 첫번째,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낼까?

동아시아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의 하나인 『논어(論語)』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君子)답지 아니한가?”

■ 인간, 언제나 배우는 존재

여기서 선생님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논어』는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정리한 책이다. 도대체 공자의 제자들은 어째서 이 말을 책 전체의 첫머리에 실어 놓은 것일까? 여기서 잠깐 국민학교 교실의 한 장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선생님이 ‘위선자(僞善者)’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여러 분 중에 위선자의 예를 들어 볼 사람은 없나요?” 그러자 우리의 용감한 똘이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위선자란 학교에 올 때 웃으면서 오는 학생입니다.” 아마도 똘이 학생은 배움이란 즐겁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대학생 여러분들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배움이란 괴로운 것, 강요와 억압에 의해 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고.

앞서 인용한 『논어』의 첫 구절의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이 해석을 보다 전문적으로 논의하자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되기에 여기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논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통상 ‘학(學)’이라는 글자를 ‘배우다, 배움’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학문(學問)’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배우고 물음(學問)’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학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흔히 ‘학문의 전당’이라고 대학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학문’(즉, 서구의 사이언스[Science]를 번역한 말)과는 다르다. ‘배울 학(學)’의 의미는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본받는다, 모방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전통 문명에 있어서 배움이란 궁극적으로 ‘본받고 모방하는’ 행위였다. 배움이란 이론을 학습하는 행위가 아니다. 배움이란 이상적인 인간 혹은 인격을 본받고 모방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이란 바로 인간을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생의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서구의 근대 과학 또는 근대 학문은 학문과 인생을 분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제도적으로 받는 교육은 적어도 국민학교 이후, 바로 이러한 서구의 근대적 학문을 근간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인생의 문제와 무관한, 적어도 무관하게 보이는, 객관적 지식의 체계를 수용하고 흡수하는 데 전력투구하도록 요구 당한다. 똘이 학생의 대답은 어쩌면 이에 대한 항변일지도 모른다.

■ 대학, 그 무한한 가능성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다수는 대학생일 것이다. 갓 구워낸 빵처럼 따끈따끈하고 신선한 새내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취직 고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4학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에서 대학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실적인 대학의 모습이야 우리들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자신은 국민학교 이래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한 번도 개근상이나 정근상을 타 보지 못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학교는 가기 싫은 곳이라는 느낌을 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들어가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창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대학이야말로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곳이며,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경우가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학과나 전공 같은 제도적 틀보다도 대학 생활 자체가 더욱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정말이지 어떤 전공이나 학과도 알고 보면 부드럽고 소중하다. 어쨌거나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학과나 전공의 틀만이 아니라 자신이 보내는 대학 생활 전체이다.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까지는 상당히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교육을 받는 곳에서는 대학을 입학할 때의 모습이란 대부분 비슷하다. 설령 내신 성적이나 수능 고사 혹은 본고사의 성적에 우열의 차이는 있더라도, 남보다 월등 탁월한 수재나 천재가 아닌 이상, 서로 고만고만하며 기껏해야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4년의 생활, 남학생의 경우는 때에 따라 군대를 포함해 10년 만에 졸업하는 일도 있겠지만, 이 짧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크게 좌우된다. 어떤 사람은 빌 게이츠(Bill Gates)처럼 학교를 중퇴하고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대학 생활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빌 게이츠가 되기보다는 대학 생활을 충실히 보내며 여러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학의 무한한 가능성이란 여러분이 축제 때 ‘파트녀(또는 파트남)’와 함께 먹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무한한 가능성은 엄청난 좌절과 무수한 방황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문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생들이 당황하게 되며 심지어 황당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런 당혹과 충격은 이전까지의 교육이 타율적이고 강제적이었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대학은 여러분이 성인이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생활을 스스로 일구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여기서 똘이의 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타율적이고 강제적이었던 이전의 교육과 자율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할 대학의 생활을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비극은 있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이 ‘비극’의 그럴듯한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이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근대적 ‘학문’의 전당이라고 일컬어지던 대학도 더이상 ‘학문의 전당’이나 ‘진리의 상아탑’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대학은 ‘전문 직업인 양성소’이다. 이전에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대학을 다녔고, 그들은 사회나 학술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능력이 있고 여건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학문에 전념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석·박사를 수료한 뒤에 자기 분야의 전문 연구자나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만 대학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학생은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또한 그 사회 진출의 경로도 자기 전공이나 학과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학 생활의 고민은 단지 새내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전공이나 학과를 소문이나 무지로 지원하거나 또는 단순히 성적의 수준에 맞추어 진학한 경우, 그 고민은 더욱 클 것이다. 이 결과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전공과 상이한 분야를 기웃거리기도 하며, 심지어 남학생의 경우 일찍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것이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앞에서 나는 전통의 학문은 인생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으며, 또한 이상적인 인간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제도는 이런 문제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울러 본받을 만한 인격이나 인간을 주변에서 쉽사리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주위에 있지만 아직 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자신이 보다 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다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과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독서(讀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에서 많은 선배나 교수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고전(古典)을 읽어라! 명저(名著)를 읽어라! 여기서 고전과 명저를 읽는 일은 어떤 면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길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고전과 명저의 이해도 심화되는 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전과 명저를 읽을 수 있고,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과연 어떻게 하면 배양할 수 있겠는가 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가이다.

현재 나는 대학을 ‘30년대’ 동안 다니고 있다. 결코 30년이 아니다. 78학번이기 때문에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30년대를 통해 대학을 다녔다는 말이다(박사 과정을 포함해서). 하지만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교육이 지나치게 근대적 학문관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라는 점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분야나 전공은 가르쳐 주지만, 공부하는 법이나 생활하는 법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고기를 낚아 주기만 할 뿐, 고기를 낚는 방법은 별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비록 대학 입학을 전후하여 이른바 ‘오리엔테이션’이 있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소략하다. 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을 소개받는 신입생 당사자도 흥분에 들떠 막상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지나치는 일이 흔하다. 물론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선배나 친구, 혹은 조교들로부터 충고나 조언을 받아서 대다수 학생들은 커다란 문제없이 그럭저럭 대학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만약 대학 생활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안내를 받는다면, 그 생활은 더욱 즐겁고 보람차지 않을까? 항상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단지 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대학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한편으로 선배로서, 한편으로 선생으로서 대학 생활을 위한 안내와 충고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안내와 충고를 모든 개개인의 사정과 상황에 맞추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대학 생활에 관련된 책을 소개함으로써 이를 대신하려고 생각한다.

■ 우선적으로 먼저

앞서 나는 고전과 명저에 대해 말했다. 어떤 사람이 “고전이란 누구나 읽으라고 권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는 다소 풍자적인 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고전과 명저는 무엇보다 대학의 독서 생활에서 기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교양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전과 명저란 결국 독자에게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만 될 뿐이다. 이 연재에서는 그보다 오히려 대학 생활의 구체적 측면에 도움이 되는 책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책이 자신의 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고 유용한지 먼저 충분히 경험을 쌓는 것도 고전과 명저를 향한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내가 첫번째로 안내하고자 하는 책은 대학 생활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급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준비하였다. 먼저 졸업생과 재학생이 쓴 『대학 생활 소프트』(일빛, 1994)를 소개한다. ①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는 지혜, ② 동아리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는 비결, ③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지혜, ④ 시험, 그리고 그 이후, ⑤ 여가 시간에 대학 생활을 즐기는 비결 등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은 83개의 항목을 통해 대학 생활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취방을 고르는 법에서부터 유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대학 생활에 필요한 요령을 별도의 박스로 처리하고 있는 꼼꼼함이 눈에 띤다. 한편 졸업생들이 자신의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새내기들을 위해 대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정리한 『재미있는 대학 여행』(이목, 1994)도 있다. 마지막으로‘대학,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찾을 것인가’라는 부제의 『새내기 일년 나기』(대동, 1994)가 있다. 이 책은 입학하는 3월부터 새내기 생활을 마치게 되는 다음해 2월까지 대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월별로 정리하였다. 물론 이들 말고도 이전에 나온 책들이 있으나, 현재의 대학 생활에 다소 맞지 않기에 생략한다. 학교나 학생회에서 발행한 대학 생활의 소개 책자와 함께 이들 책을 본다면,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다만 이 세 책은 각기 특색이 있으므로 서점에서 직접 서로 비교한 뒤 자신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것으로 선택하기 바란다).

이상은 대학 생활의 전반적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달리 말하면 청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가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ion)”고 했지만, 이 요구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바로 자신에 대한 성숙된 이해일 터인데, 이를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마지막으로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열 일곱에서 스물 다섯까지』(도솔, 1992)이다. ‘나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지금 알아두어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은, ‘남자편’과 ‘여자편’이 각각 별도로 나뉘어 있다. 자기가 직접 사보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이성 친구를 위해 사서 선물로 전해 주는 것도 또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자신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여러 질문의 방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발행된 것을 번안한 책이라 곳에 따라 우리 실정에 부적절한 사례도 있지만, 어쨌든 대학 시절을 보내면서 반드시 읽어 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지성과 패기 1994년 3·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