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나, 대학생과 글쓰기
11. 열한번째, 대학생과 글쓰기
■ 튼튼한 기초는 성공의 지름길
시험 답안, 리포트, 졸업 논문 등 실상 글쓰기는 대학 생활의 필수 과정이지만, 글쓰기 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도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실정이며 문제점이다. “하늘 아래 쫓기어 나오지 않는 문장이라곤 없다”는 중국인들의 말처럼, 나 자신도 항상 글쓰기에 곤혹을 느낀다. 먼저 글쓰기 의 기초를 생각해 보자. 튼튼한 기초야말로 모든 일에서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글을 쓰기 위한 첫번째 기초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라고 하겠다. 『한글 바로쓰기』(종로서적, 1989)는 맞춤법, 표준어,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문장 부호를 다루고 있다. 「글쓰기 서당」 총서의 첫째 권인 이 책은 1989년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라 『한글 바로 띄어쓰기』를 전면 개편한 책이다. 상용하기 간편하게 만들어서 작지만 실용적이다. 참고 삼아 「글쓰기 서당」 총서의 구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논문과 리포트 쓰기』, 『시의 사전』, 『문장 바로쓰기』, 『시쓰기 입문』, 『문장 365일』, 『외래어 표기법(I) : 일반 용어』, 『외래어 표기법(II) : 인명·지명』, 『해설 고사성어 이해』, 『우리말 속담 사전』, 『서양의 고사 명언』, 『문장 용어 사전』 등등. 외국어의 학습만큼이나 모국어의 활용에서도 사전은 중요한데, 『출판저널』 178호(1995년 10월 5일자)의 「우리말 특수 사전들」은 상소리, 속담, 유래 사전 등 다양한 구성과 특수한 형태의 사전 10여 종을 소개한다.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듯하여 몇 가지 사전을 소개한다. 한글학회에서 엮은 『국어학 사전』(한글학회, 1995), 『한국 땅이름 큰사전』(한글학회, 1991), 정태륭이 엮은 『우리말 상소리 사전』(프리미엄북스, 1994), 이훈종이 엮은 『민족 생활어 사전』(한길사, 1992), 박영수가 엮은 『만물 유래 사전』(프레스빌, 1995), 이승훈이 엮은 『문학상징사전』(고려원, 1995), 김도환이 엮은 『한국 속담 활용사전』(한울아카데미, 1993), 정종진이 엮은 『한국의 속담 용례사전』(태학사, 1993), 박용수가 엮은 『우리말 갈래 사전』(한길사, 1989),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어문각, 1993), 송재선이 엮은 『상말 속담 사전』(동문선, 1993) 등. 이밖에도 최근 출간된 박용수의 『겨레말 용례사전』(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바른말글 사전』(한겨레신문사, 1997) 등도 유용한 사전이다. 이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말을 보다 아름답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데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같은 호의 특별 논단도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는 데 유용하다. 나는 결코 순수 우리말 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지성과 패기』에도 연재되고 있고 최근 기존에 발표된 원고들을 모아 출간된 『고종석의 유럽 통신』(문학동네, 1995)의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글을 쓰는데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무엇보다 소중하며, 이 점에서 이오덕의 노력과 공로를 잊을 수 없다. 『우리글 바로쓰기 1, 2, 3』(한길사)과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 1992)를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 글쓰기의 기본 안내서들
‘아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는 김해식의 『글쓰기 소프트』(새길, 1993)는 글쓰기에 포위된 대학생을 위한 적절한 안내서이다. 글쓰기의 기초에서 실제 과정까지 그 맥을 짚어 주는 이 책은 대학 생활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기초」, 「연습」, 「어떻게 쓸 것인가?」, 「실제」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과 ‘효율적 이용의 안내’가 매우 유용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승훈의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아카데미, 1992)는 글짓기의 이론과 실제에 초점을 둔 일반인을 위한 안내서이다. 글의 정의에서 명제의 중요성, 글의 구조, 문장의 조건, 낱말의 조건, 문체, 글의 유형과 모형에 이르기까지 글과 글짓기의 일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소주제의 확장, 서두의 시작, 본론의 구성, 결말에 대한 여러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다소 분량이 많지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사닥다리, 1995)에서 저자 서정수는 글짓기가 감성의 발로가 아닌, 이성적 사고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시적 상상력보다 논리적 전개와 체계적 구성 능력을 배우라는 이 책은 특히 단락과 소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편, 다음 두 책은 일반적 작문은 물론 영어 작문에 관심이 있을 경우에도 유용할 것이다. 스콜즈와 클라우스의 공저 『Elements of Writing』을 옮긴 『글쓰기의 길라잡이』(세종출판사, 1995)는 「글쓰기의 요소」, 「문맥」,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소한의 필수적인 이론과 흥미 있는 연습 문제로 구성된 간결한 책이다. 이을환 외 지음의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최신 작문 이론』(경문사, 1985)은 신입생을 위한 미국 대학의 작문 교재인 하트웰의 『Open to Language : A New College Rhetoric』을 편역한 것이다. 자유 작문 및 창안 원리로 산문과 작문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보여 주는데, 예문에 대해 원문을 가급적 살린 『글쓰기의 길라잡이』와 달리 취사선택하여 보충하고 의역한 점이 다르다. 그 공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태준의 『문장강화』(창작과 비평사, 1988)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강론한다. 신문학 20년이 도달한 성과를 풍부한 예문을 인용하며 집결해 놓은 이 책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문장 공부의 고전이라 하겠다. 증보판 『좋은 글, 잘된 문장은 이렇게 쓴다』(문학사상사, 1993)는 50인의 필자가 밝히는 문장의 수업 과정과 글쓰기 비결을 담고 있다. 문장 수업에 도움이 된 책과 스승,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들려주는 이 책은 살아 있는 문장 작법일 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흥미도 불러일으킨다. 인생과 문학의 체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문학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일독의 가치를 지닌다.
■ ‘바칼로레아’를 아십니까?
‘바칼로레아’란 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다. 그 자신 대단히 뛰어난 번역가이자 훌륭한 문장가인 김화영의 『논술의 일곱 가지 열쇠』(창, 1994)는 실제의 논술 작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지침을 제공할 목적으로 바칼로레아의 논술 과목 참고서를 편역한 것이다. 편역자는 논술이 타고난 재능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력과 훈련으로 그 능력이 개선되고 발전된다는 입장에서 대학생 수준 이상의 독자를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특히 7가지 설계 형태를 언급하는 「논술의 본론」과 각종 사례 분석이 눈에 띈다. 이 좋은 책이 그다지 소개되지 않음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에 비해 『모범 답안 1, 2』(예하, 1995)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우수한 모범 답안을 철학 교수의 논평과 함께 주제별로 모아 놓은 일종의 ‘수험 준비서’이다. 제기되는 문제를 이론적 전거와 비판적 통찰을 통해 명쾌하게 논술하는 소양을 길러 주는 것이 목적인 이 책은 철학의 각종 개념과 주제를 쉽고 명쾌하게 서술하는 「인간과 철학」 시리즈의 하나이다. 논술문의 기초가 논리적 사고임을 감안하여 일단 다음의 두 책을 소개한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기술』(서광사, 1994)은 논리학의 기본 규칙을 쉽게 설명하면서 이를 구체적 상황에 응용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논리적 사고의 기술은 자기 생각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거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의견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이 책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독자에게 다양한 분야의 이해를 돕기 위해 1,000단어에서 5,000단어까지의 다섯 사다리로 구성되는 「The Ladder Series Books」 즉 「사닥다리 시리즈」의 하나이다. 영어 학습에 유용한 시리즈임을 알려 둔다. 한편,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책과 사람들, 1993)는 개념을 밝히는 특별한 방법으로서 ‘사고의 기술’인 ‘개념 분석법’에 대해 다룬다.
■ 논문과 리포트를 쓰는 법
대부분의 대학은 논문 형식에 대한 자체의 규정이 있으며, 논문 작성법의 안내 책자도 출판하고 있다. 먼저 자기 대학의 규정과 책자를 정독하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작성법 강의』(열린책들, 1993)를 추천한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의 저자이며 세계적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열악한 환경(우리 대학들도 그만큼 열악하므로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에서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이탈리아 대학생을 위한 지침서로 쓴 것이 이 『논문 작성법 강의』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과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는 최초 단계로서의 졸업 논문이 지니는 여러 의미를 예시하며, 졸업 논문의 작성이 개인적 삶에 지니는 의미도 강조한다. 대학에서 논문 작성 요령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서는 필수 불가결한 책이다.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이 책은 한 마디로 대학 생활의 필독서인데, 「이론과 실천」사에서 출판된 『논문 작성법 강의』는 독어본의 번역임을 덧붙인다. 한편 『논문 리포트 작성의 열쇠』(청송, 1991)와 『논문의 레토릭』(청송, 1993)은 일본의 서양 사학자인 사와다 아끼오의 저서이다. 대학생과 연구자의 논문 작성과 연구에 대한 안내일 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설명, 의논, 설득의 기초 훈련을 의도하고 있다. 논문 쓰는 법은 문장론이 아니라, 구조적 논문을 구성하는 전략론이며 레토릭의 운영이라고 생각하는 저자가 이론적 실용서의 입장에서 이 책들을 쓰고 있다. 번역이 다소 생경하지만 일독을 권한다. 김리나가 옮긴 실반 바넷의 『미술품의 분석과 서술의 기초』(시공사, 1995)는, 하나의 미술품을 보고 분석하여 논문이나 비평문을 쓰는 데 참고해야 할 여러 관점과 문제점을 평이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치고 있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문화와 예술의 비중을 생각하면 이 책의 가치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힉스의 『과학 기술 논문 작성법』(동방도서, 1985)은 과학 기술 기사, 보고서, 학술 논문, 카탈로그, 취급 설명서, 광고, 훈련서, 기술서 등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의 저술을 집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나 기술자를 지망하는 이공계의 학생들에게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각종 제품에 대한 요령부득의 설명서나 매뉴얼을 볼 때마다 이공계나 자연계의 국어 교육이 참으로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와 전통을 생각한다
자주 강조했듯이, 학습이란 모방에서 비롯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훌륭한 논문을 몇 편 골라서 그렇게 쓰고자 연습하라.”고 중국의 유명한 현대 철학자는 충고하고 있다. 전통 시대에 문장을 배우는 방법이란 고전(古典)과 대가(大家)의 모방이었다. 그 모방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모방하고 사숙할 수 있는 작가(학자)를 찾는 일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대학 시절의 과제이다. 여기서 최근에 내가 만난 한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커다란 눈이 이상과 몽상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작은 다른 눈은 현실을 냉철히 지켜보는 듯한 표정이다. 어딘지 무기(巫氣) 또는 영기(靈氣)를 느끼게 하는 얼굴. 서구의 중세였다면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지나 않았을까? 한편으로 위압감을 주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모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지성과 감성, 이성과 관능의 절묘한 배합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 1, 2, 3, 4, 5』(한길사), 『남자들에게』(한길사, 1995), 『바다의 도시 이야기 : 베네치아 공화국 천년사 상, 하』(한길사, 1996),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 1996) 등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작가’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만큼이나 진정한 작가를 ‘월리’보다 찾기 어려운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가다. 언젠가 신촌에 있는 서점 「오늘의 책」에서 한국 현대의 산문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일말의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우리 문학에는 전통과 고전의 소양을 근거로 당대의 현실과 치열히 대결하는 작가와 작품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노신의 산문을 선호하고, 에코의 에세이를 애호하며,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그러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노신의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창, 1991)를 읽는다면 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중국 고대 산문의 각종 문체의 역사적 원류, 변천, 분류 기준, 기능, 표현 수법과 특색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한문 문체론』(이화, 1995)을 소개한다. 서사(敍事), 전기(傳己) 등 15가지 문체를 언급하는 이 책에서 고도로 발전된 동아시아 전통 산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글쓰기에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최근 우리 학계에서 일고 있는 ‘글쓰기의 혁신’이다.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시도는 최근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책을 세 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조혜정 교수의 『탈식민지 사회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 2, 3』(또 하나의 문화)이 있다.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론과 우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우리 사회의 식민성’이라고 갈파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학술연구에서 글쓰기의 혁신은 가능한가』(한울, 1996)는 강단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고 적실성있는 학문 연구와 우리식 글쓰기의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김영민 교수가 최근에 펴낸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1996)도 글쓰기 혁신에 관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겨 주는 책이다.
【지성과 패기 1995년 11·1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