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서울대100(2014매경)
40.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서울대권장도서100) 매경2014
까만돌2
2014. 11. 5. 03:20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동서문화사(하재홍 옮김)와 홍신문화사(이명성 옮김)의 번역본이 유통되고 있다. 책세상(고봉만 옮김)의 요약본은 너무 간략하지만 대략적인 맥을 짚을 수는 있다.

“로마인은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약간의 너무 가혹한 법 때문에 그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었으나, 당파싸움 결과 로마에서 쫓겨났던 배우 필라드를 그가 불러들이자마자 불만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 글은 몽테스키외(1689~1755년)의 명저인 ‘법의 정신’에서 ‘국민의 일반정신 습속(제19편)’에 나온다.
로마인은 그 모든 법을 빼앗겼을 때보다도, 한 사람의 희극 배우가 추방됐을 때 더욱 절실하게 폭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폭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면서 하나는 현실적이어서 통치가 몹시 사나운 데에 있고, 다른 하나는 여론적이어서 통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사고방식에 어긋나는 사물을 만들 때에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주장한다. 배우의 추방은 여론을 크게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사안으로 폭정의 체감지수를 피부로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도덕을 이루는 원리와 관계에서의 법(제19편)을 다루면서 ‘일반정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많은 것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즉 풍토·종교·법률·통치의 격률·과거사례·습속·도덕 등이 있다. 그곳들로부터, 그것들에서 유래하는 일반정신이 이루어진다.”
일반정신은 법이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준 특수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법은 그 나라의 지세·기후·풍토·위치·면적·직업 그리고 개인적 자유의 정도·종교·주민성향·부·인구·상업·풍습·생활양식에 관련돼야 하며 이것이 전반적으로 ‘법의 정신’을 이룬다는 생각이다.
몽테스키외는 먼저 국민의 기질 등을 고려해 법의 제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률에 의해 국민의 일반정신을 바꿀 수 없고, 바꾸게 한다면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는 여자의 사치라는 흥미로운 사례를 든다. 여자의 사치는 법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사치를 예방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
“여자의 사치를 억제하고, 그 습속을 고치는 법률을 제정하여 사치를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국민의 부의 원천인 어떤 종류의 취미, 그 밑에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우아함 같은 것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는 그가 살던 18세기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사치를 상징하는 국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방문하고, 또는 방문하고 싶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몽테스키외는 국민의 습속과 생활양식을 법으로 바꿔서는 안 되고 대신 자연적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권고한다.
“군주가 그 국민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고자 할 때엔, 법에 의해 설정된 것은 법에 의해 개혁하고, 생활양식에 의해 형성된 것은 생활양식에 의해 변경하여야 한다.” 이게 자연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그러므로 생활양식에 의해 바꿔야 할 것을 법에 의해서 변경한다는 것은 매우 나쁜 정책이다”라고 못 박는다.
몽테스키외는 기후와 풍토성이 용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흥미롭게도 한국의 사례가 나온다.
“중국의 북부 민족은 남부 민족보다 용감하고, 한국의 남부 민족은 북부 민족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제17편 2장)
흔히 고구려가 용맹하다는 말을 하는데, 몽테스키외의 분석에 따르면 그 이유는 기후로 인한 기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더운 지방 민족의 나약함이 거의 항상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추운 지방 민족의 용기가 그들의 자유를 보존케 했다”고 갈파한다. 여기서 논의를 비약시켜 유럽에는 민주정체가, 아시아에는 전제정체가 많다고 몽테스키외는 분석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이룬 또 하나의 물리적인 요인인 인구(제23편)에 대해 논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 로마나 몽테스키외가 살던 당시 프랑스에서도 오늘날처럼 출산 기피에 시달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 독신을 막는 다양한 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일반정신을 이루는 여러 원인에 이어 ‘정체(政體)’의 본질과 원리를 든다. 그는 먼저 공화정체와 군주정체, 전제정체라는 세 가지 정치체제로 구분한다.
“공화정체란 국민 전체 혹은 단지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이고, 군주정체란 군주 한 사람이 통치하지만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제정된 법을 따르는 정체다. 전제정체란 군주 한 사람이 법이나 규칙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나 기분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정체를 말한다. 공화정체에서 국민 전체가 주권을 갖는다면 그것은 민주정체이고, 주권이 국민의 일부에게 있다면 그것은 귀족정체라 불린다.” (2편 1, 2장)
민주정체는 덕성, 귀족정체는 온건(절제), 군주정체는 명예, 전제정체는 공포를 원리로 한다. 따라서 공화정체든 군주정체든 전제정체로 타락하는 것을 피하려면 그들의 원리를 보전하기 위한 법들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이론이 마련됐다.
정치사상사에서 몽테스키외의 진가는 바로 삼권분립에 의한 정치적 자유론에 있다. 그는 영국을 여행하며 경험하고 관찰한 영국 의회 정치에서 정치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발견한다. 그게 바로 삼권분립론이다. 이를 논한 제11편 6장은 ‘법의 정신’의 핵심에 해당한다. 즉 입법권과 만민법에 관한 사항의 집행권, 시민법에 관한 사항의 집행권은 저마다 독립 기관에 의해 행사돼야 하고 권력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권력 이외의 어떤 것도 권력을 억제할 수 없으며, 권력을 억제하지 못하면 전체주의가 뒤따르게 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 왜 법이 필요할까. 몽테스키외는 이를 ‘평등의 상실’로 설명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사회적 삶을 살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평등은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비록 사회 속에 평등이 포함돼 있더라도 사회는 평등을 바탕으로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물론 평등 속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이 이러한 평등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들은 법에 의해서만 다시 평등해질 수 있다.” (제8편 3장)
여기가 바로 법이 필요한 지점이다. 개인 간에는 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사회는 자기의 힘을 느끼는 까닭에 개인 간이나 사회 간에는 저마다 투쟁 상태가 빚어져 실정법이 발생한다. 이것을 세계 전체로 보면 나라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만민법, 지배자와 피지배자(국가와 국민) 사이에는 정치법(공법), 각 구성원 사이에는 시민법(사법)이 생겨 서로 규제를 한다. 이게 각 법의 개념이다.
몽테스키외는 20년에 걸쳐 ‘법의 정신’을 정립했다. 법은 한 나라의 자연·풍토·습속·종교·가치관·경제와 함께 정체의 성질과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런 관계의 총체가 바로 ‘법의 정신’을 형성하고, 이런 법의 정신은 인간의 자유나 본성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에 의한 운명적 역사관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언이었다. ‘법의 정신’은 각 민족의 정체·풍습·풍토 등에 적합한 획기적인 법의 탐구인 셈이다. 하지만 ‘법의 정신’은 교황청에 의해 1751년 금서로 지정됐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위한 변론’을 쓰면서 대항했지만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러 결국 66세로 세상을 떴다. 그 역시 핍박받고 불운한 천재였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0호(06.04~06.10일자) 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0호(06.04~06.1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