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향원익청(곽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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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코 묻은 떡이나 다투라는 건가!人間/향원익청(곽병찬) 2017. 1. 20. 22:49
“뉘시오.” 채소밭을 가꾸던 노인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아, 섣부른 지식으로 성인 흉내를 내고(博學以擬聖), 허망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於于以蓋衆), … 그 사람?”( 12편 ‘천지’) 조선왕조 정체성의 원천인 공자를 능멸한 이 일화에서 유래한 ‘어우’(허망한 말)를 제 호로 삼은 이가 있다. 조선 중기 최고의 문장가 유몽인이다. 묵호자, 간재 등의 호도 있지만 그는 사실 ‘어우’로만 불리길 원했다. 이본이 30종이나 되는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던 그의 야담집 제목도 ‘어우야담’이었고, 자신의 문집 또한 ‘어우집’이라 이름했다. 그렇게 전복적인 그였으니 “누구에게도 머리 굽혀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이 열다섯에 처고모부인 우계 성혼 밑에서 수학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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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을 기억하시게, 누이의 애가를人間/향원익청(곽병찬) 2015. 4. 8. 18:57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시인 박기동과 작곡가 안성현의 누이도 온다 간다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갔다. 1947년 박영애는 벌교에서 스물넷에, 안순자는 광주에서 15살에 세상을 떴다.시인 김소월이 자란 곳은 평안북도 정주의 바닷가 마을이었으니, ‘뒤뜰 밖 갈잎의 노래’는 온전한 꿈이었을 것이다. 소월도 가고 꿈도 갔지만, 시 ‘엄마야 누나야’는 북의 정주를 떠나 남의 나주 남평 지석강에서야 꿈꾸던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지석강이 키운 안성현을 만나 노래가 되었고, 금모래와 갈잎의 노래에 둘러싸인 노래비로 남았다. 박기동 시인의 ‘부용산’이 이 땅의 누이를 위한 불멸의 애가(哀歌)로 남게 된 것도 그곳 안성현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화순군 이양면 왕피나무골에서 발원한 화순천은 능주 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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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선암사처럼 늙어라人間/향원익청(곽병찬) 2015. 4. 8. 17:23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600살 이상 된 나무만 해도 무우전 옆 매화 서너 그루, 무량수각 앞에 누운 소나무, 지장전 위엔 영산홍, 자산홍 열댓 그루, 칠전차밭의 700살 넘은 차나무가 있다. 모두가 선암사의 부처님이다.옳아, 자네 코에 지금 한창인 때죽나무 향기가 스쳤는가 보군, 아니면 작약의 아릿한 향기가 자네를 홀렸든가. 아니면 누이의 추억 같은 찔레꽃 향기를 맡았거나. 퉁방울눈을 한 할배는 다짜고짜 종잡을 수 없는 환영사를 풀어놓는다. 그 푸근한 인상과 입심으로 보아 오랫동안 주지로 있다가 모든 걸 내려놓은 그 스님 같았다.장승 할배가 산문을 지키는 것부터 뜻밖이었다. 동구 밖에 버티고 서서 액도 막고 나쁜 손님 겁도 줄 일인데, 산문지기 구실은 드문 일이다. “궁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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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천국을 일군 한 동성애인의 꿈人間/향원익청(곽병찬) 2015. 4. 8. 17:16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육우당이 자살하기 꼭 1년 전, 민병갈 천리포수목원 원장은 꽃상여에 실려 마을 친구 김아무개씨의 선소리를 좇아 수목원 구석구석을 밟고는 세상을 떴다.가련한 사람!열아홉 눈부신 나이에 벗이라곤 술·담배·수면제·파운데이션·녹차 그리고 묵주뿐이었다, 그래서 제가 지은 별호가 육우당.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성노동자·장애인·이방인을 더 감싸고 사랑했던 예수의 뒤를 따르고자 했지만, 교회는 앞장서 그에게 돌을 던졌다. 지옥 불에 던져질 죄인! 한번쯤 마음껏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노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어디에도 그가 머리 둘 곳을 내주지 않았다.육우당이 자살하기 꼭 1년 전, 민병갈 천리포수목원 원장은 꽃상여에 실려 마을 친구 김아무개씨의 선소리를 좇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