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문학사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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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김동인 미발굴 자료3 (김태완기자2012.6.월간조선)人間/문학사의풍경 2018. 3. 28. 23:35
발굴해방공간 金東仁 미발굴 자료 ③ 끝해방공간의 ‘괴물’ 앞에 번뜩인 비판정신⊙ 초기 소설에서 보이던 예술 지상주의 관념, 해방공간에서 사라져 ⊙ 현실이 극악하자, 비판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 우익에 대한 확고한 신념 지켜내 해방공간 김동인(金東仁·1900~ 1951)은 궁핍했다. “명문집 귀동으로 고이고이 자라나 가난을 모르던 젊은이, 천금의 귀한 줄 모르고 만금의 많은 줄을 모르던”(김윤식, 《金東仁 硏究》, 1987) 그였지만, 가산을 탕진하고 해방이라는 충격적인 현실 앞에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일제 패망(敗亡)과 친탁(親託), 반탁(反託)의 좌우 갈등, 분단을 목도한 김동인은 신문 연재 글을 통해 사회 현실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초기 소설에서 보이는 예술 지상주의적인 관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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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김동인 미발굴 자료2 (김태완기자2012.5.월간조선)人間/문학사의풍경 2018. 3. 28. 23:22
발굴해방공간 金東仁 미발굴 자료 ②오로지 ‘욕설’로 이름 석 자를 알린 좌익 문사들 ⊙ 좌익 계통 작가의 대부분이 ‘욕설의 축적’ 출세의 기반 삼아 ⊙ 1945년 美군정 간부가 불하한 적산가옥에 살던 김동인, 1년 만에 쫓겨나 ‘욕설’과 ‘일인가옥’(日人家屋)은 광복 이후 김동인(金東仁·1900~1951)의 생활과 심리상태가 잘 드러난 글이다. 좌우 극심한 혼란기 ‘군돈’ 같은 원고료로 생계를 이어야 했던 시기다. ‘욕설’은 1946년 7월 12일부터 21일까지 10차례, ‘일인가옥’은 같은 해 7월 25일부터 31일까지 《가정신문(家政新聞)》에 6차례 걸쳐 실렸다. ‘입에 풀칠을 위한 글쓰기’, ‘호구(糊口)의 문학’이라고 할 정도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쓰던 시절이었다. 날마다 글을 써야 했으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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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김동인 미발굴 자료1 (김태완기자2012.4.월간조선)人間/문학사의풍경 2018. 3. 28. 23:18
발굴해방공간 金東仁 미발굴 자료 독점 공개“삼천 만의 작은 인구를 몇 조각으로 나눠야 하나”⊙ ‘공연예술자료 연구사’ 김종욱씨가 수십 년간 김동인 자료 모아 ⊙ 광복 이후 박순천·모윤숙이 관여한 《가정신문(家政新聞)》에 주로 발표 ⊙ 이승만 박사를 비난하는 좌익세력을 ‘반역론자’라고 공격 좌우익(左右翼)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공간 김동인(金東仁·1900~1951) 선생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미발굴 자료가 빛을 보게 됐다. ‘공연예술자료 연구사’ 김종욱(金鍾旭·75)씨가 수십 년간 모은 자료를 《월간조선》에 제공했다. 김동인 선생의 미발굴 자료는 1960년대 초 평화출판사에서 발행한 전 5권 《김동인 전집》, 1976년 삼중당(三中堂)에서 출간한 전 7권 《김동인 전집》, 1987년 《조선일보》가 펴낸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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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풍경-백석의 만주 유랑과 해방정국] (4) 김일성과의 조우와 ‘고요한 돈강’ 번역人間/문학사의풍경 2014. 5. 19. 01:56
해방직후 조만식 통역비서… 김일성 환영회서 즉흥詩 읊기도 1945년 해방 직후 백석의 행적에 대해서는 희곡 ‘맹진사댁 경사’(1943)로 유명한 평양 출신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의 수기 ‘소군정하의 북한-하나의 증언’(1952)에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장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가 끝난 며칠 뒤, 김일성과 그 가족을 위한 환영회가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주최로 평양의 전 일본요정 ‘가센(歌扇)’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백석도 초대받아 갔다. 김일성은 칠십 전후로 보이는 조모와 함께 비서 문일을 대동한 채 상석(上席)에 앉았고 주최자인 고당 조만식(1883∼1950) 위원장은 상석 우측에 앉았다. “문학계의 대표로 소개된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