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현대사아리랑(김성동2009)
-
부러져버린 ‘인민의 고무래’ 박헌영 ②社會/현대사아리랑(김성동2009) 2018. 12. 30. 16:24
당시 여론조사서 대통령감 1위로 월북 전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시절의 박헌영. 1925년 4월 17일 열린 조선공산당 창립대회에 ‘화요회 야체이카’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것은 ‘동아일보’ 지방부 기자로 있을 때다. 초대 책임비서는 김재봉(金在鳳, 1890~1944)이다. 다음 날 열린 고려공산청년회 제1차 창립대표회를 김단야·조봉암(曺奉岩, 1899~1959)과 함께 치렀고 사흘 뒤에 열린 고려공청중앙간부회에서 책임비서로 선임됐다. 8월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들어갔다가 두 달 만에 해직됐는데, 사회주의 기자를 해직하지 않으면 발행 정지 처분을 해제하지 않겠다는 총독부의 희망에 따른 것이다. 10월 25일 한양청년연맹 주최로 ‘반기독교 대강연회’가 열렸다. 이때 강사와 강연 제목은 김단야 ‘기독교의 기..
-
부러져버린 ‘인민의 고무래’ 박헌영 ①社會/현대사아리랑(김성동2009) 2018. 12. 30. 16:06
약관의 21세 조선 최초 공산주의자 되다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코올 병에 담가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같이 부풀어 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이던가 ‘상록수’의 작가로 유명한 심훈(沈薰, 1901~1936)이 1927년 12월 2일에 쓴 시다. ‘박군의 얼굴’이라는 제목인데, 심훈의 슬픔과 노여움은 격렬하게 이어진다. 4년 동안이나 같은 책상에서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 사람의 박은 교수대 곁에서 목숨을 생으로 말리고 있고 C사에 마주앉아 붓을 잡을 때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은 모진 매에 창자가 꿰어서 까마귀 밥이 되었거니. 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