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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소년처럼
    雜多閑/이것저것 글 2015. 7. 17. 21:59


    Like A Girl :  https://youtu.be/XjJQBjWYDTs


    마치 소년처럼 (시사in) 409호 


    "소녀처럼 달려보세요. 소녀처럼 싸워보세요." 올해 칸 광고제 그랑프리를 받은 캠페인 광고 'Like a girl'은 여성성의 신화에 유쾌하게 균열을 낸다. 오디션을 가장한 실험 카메라 앞에서 젊은 남녀들이 소녀처럼 연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들은 '소녀처럼' 수줍게 총총거리고, 주먹 대신 앙탈을 날렸다. 그러나 같은 요청에 열 살 전후 '진짜 소녀들'의 반응은 달랐다. 소녀들은 힘껏 달리고, 던지고, 자신에 찬 주먹을 휘둘렀다. 뭐랄까, 마치 소년처럼.

    생물학과 인류학을 포괄하며 인간 문명화의 역사를 탐사하는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Sapiens)>에 따르면 역할과 권리, 의무로 정의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대체로 생물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 상상의 산물이다. 농업혁명 이후 인간 사회를 지배해온 가부장제 문화는 남성에게 지배적 역할(정치참여)과 권리(투표), 의무(병역)를 부여했다. 반면 여성에겐 육아의 역할, 폭력에서 보호받을 권리와 남편에게 복종할 의무 같은 것들이 주어졌다. 모두 남성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 견고한 위계질서 안에서 우리는 남자답게, 여성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교육받는다. 확신 있고 강하던 소녀는 점차 '소녀처럼' 힘을 잃는다.

    하라리는 의문을 품는다. 가부장제가 정치사회적 격변 후에도 집요하게 살아남았고, 거의 모든 문화에서 남성이 높은 위치에 있다면 보편적생물학적 근거가 있지 않을까? 그는 남성과 여성을 순서 짓는 여러 생물학적 이론들(남성이 육체적으로 더 강하고 훨씬 공격적이다, 공격적인 남성 유전자와 복종적인 여성 유전자 등 '가부장적 유전자'가 전해졌다 등)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생물학적 실재를 찾아보려 한다. 하라리는 어떤 이론도 설득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의 위계는 육체적 힘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능력으로 정해진다. 남성은 공격적이지만 전쟁은 조직력과 협력술, 유화책이 필요한 복잡한 일이라 군대를 이끄는 일에는 협력적 여성이 훨씬 적합할 수 있다. 가부장적 유전자 전달 주장도 협력적 네트워크가 발휘하는 영향력을 보자면 설득력이 약하다. 

    결국 남성성과여성성의 실재는 생물학적 근거가 아니라 "우연한 상상의 산물을 잔인한 사회구조로 바꾸어버린 사건과 상황, 권력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드센 여자, 초식남이 득세하는 세상에 무슨 해묵은 소리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진짜 평등은 남성성 여성성에 집착하지 않을 때 의미가 있다. 계집애 같다는 소리가 두려운 남성들이나 '소녀처럼'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여성도 여전히 많다. 아직은 멀었다. 










    박정남 (교보문고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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