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 보편적 복지는 틀렸다社會/자본주의오해와진실2015한국경제 2015. 11. 6. 22:22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 보편적 복지가 치명적인 이유
극빈층 제대로 보호 못하면서 중산층 이상 복지 확대 곤란
"복지 확대가 국가의 존재 이유 아니다 경제윤리 위축과 가족의 파괴 부를 것"돈 아닌 국가철학의 문제 시장이 할 일 빼앗는 복지국가, 필연적으로 경제 자유 유린
‘석기시대’ 정신으로 회귀? 구성원이 뭉쳐 나눠먹자는 정신 현대사회에 적용은 ‘도덕의 횡포’
보편적 복지는 ‘돈 먹는 하마’ 주인 없는 돈, 책임질 사람도 없어…복지예산의 남용·낭비로 귀결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21세기 초의 대한민국 경제사를 쓴다면 어떻게 서술할까. 복지가 시대정신이 된, 그래서 나라가 기울기 시작한 시기라고 정의할 게 틀림없다. 지난 10여년간 의료, 연금, 교육, 보육 부문 등에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복지정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의 복지 확대가 돌이킬 수 없는 국민정서가 됐다. 어린애를 키워주고 학교에 보내주며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병도 치료해주고 늙으면 보살펴주는 등 행복 증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지국가야말로 문명의 상징이요 번영의 열쇠라는 미신까지 생겨났다.
극빈자를 위한 국가의 복지정책은 필요하다. 시장은 복지의 최대 산실이지만 빈곤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치료해도 아픈 사람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처럼 극빈자도 부단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빈곤자를 종교단체나 자선단체에만 맡길 수도 없다. 기부문화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이 없으면 ‘송파 세 모녀’처럼 자살하거나 굶어 죽을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밀턴 프리드먼이 실토했듯이 가난의 실상을 보면 참 가슴 아프고 괴롭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굶어 죽거나 자살할 빈자가 많다면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극빈층을 보호하는 ‘선택적 복지’가 복지원칙이 돼야 한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이를 구현한 게 ‘기초생활보장법’이다. 허술하지만 이 제도가 한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마저 없다면 굶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이 제도를 수선해 제대로만 시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중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힘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심지어 중산층이나 그 이상의 소득계층으로 국가의 복지를 확대(보편적 복지)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안타까운 건 그런 복지 확대를 단순히 돈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과 복지의 연계론’이 대표적이다. 이를 잘 표현한 게 영·미의 ‘저부담-저복지’, 독일의 ‘중부담-중복지’, 스웨덴의 ‘고부담-고복지’ 공식이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 확대는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많거나 돈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해서 정부의 복지를 늘려선 안 된다. 복지 확대는 원칙의 문제요 국가철학, 경제윤리의 문제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간섭주의를 옹호하는 연계론은 반쯤 틀린 게 아니라 완전히 틀렸다.정부의 복지 확대는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복지 확대는 결코 국가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둘째, 인격 존중, 독립심, 자기 책임, 기업가 정신, 가족 등 고귀한 경제윤리의 파괴를 부른다. 셋째, 높은 부담은 높은 복지가 아니라 낮은 복지를 부른다는 ‘복지의 역설’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복지국가의 산물인 사회권(社會權·social right)이다. 이는 급식, 보육, 교육 등 원하는 것을 지급해줄 것을 타인(납세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란 개념이다. 한 개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게 건전한 정부가 할 도리인가.
복지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도 없다. 그래서 시장이 할 일을 제멋대로 빼앗아 ‘권리의 과잉’을 초래했다. 급식, 건강, 교육 심지어 각종 산업보조금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사회권이 아닌 게 없다. 그래서 사회권의 입법은 법치와도 정면으로 충돌하고 공법이 사법을 괴롭히는 ‘법의 타락’을 초래한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야심 찬 복지국가는 필연적으로 폭정을 부르고 그 결과는 경제자유의 유린으로 나타난다. 국민행복(복지)은 결코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칸트의 인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무상 보육·급식, 국가 독점의 연금·의료보험처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지를 확대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 부자도 정부의 복지에 의존하는 걸 선(善)으로 여기는 사회를 정의사회라고 말하는 건 말장난이다.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기에 자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윤리가 훼손된다. 독립심을 갉아먹고 복지 의존심만 강화하고 절약, 인내심, 기업가 정신 등 개인과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덕목도 위축시킨다.
복지 확대로 육아,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노년의 삶에 대한 계획 등 가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국가가 해결하기에 필연적으로 가족의 파괴가 초래된다. 가족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한데 뭉쳐 서로 의지하면서 나눠 먹자는 게 복지국가의 도덕이다. 삶의 어려움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도덕의 원천은 ‘석기시대의 정신(stone-age mind)’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정신은 원시사회와 같이 소규모 사회에 적합한 본능적 가치다. 이타심은 오늘날에도 가족 친지와 같은 소규모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 규모에 따라 도덕도 달라야 한다. 복지국가는 소규모 사회의 도덕을 오늘날과 같이 거대한 사회에 적용하는 체제다. 그런 적용은 ‘도덕의 횡포’다. 그 결과는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기업가 정신, 책임정신, 타인의 인격·재산에 대한 존중심, 유대감 등 경제윤리의 손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 갈등, 가치 혼란, 무질서를 야기할 뿐이다.
보편적 복지는 윤리의 문제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 많은 정부의 복지 확대가 자기책임, 독립심, 진취성, 절약 등과 같은 열린 사회의 도덕을 파괴한다면 그런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 그런 문제는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잘 설명해준다. 과거 네덜란드처럼 갑자기 나온 석유로 번 돈을 정부가 복지 확대에 이용한 결과 생산활동 대신 의미 없는 소비활동 추구, 노동의욕 감소, 자기책임 상실 등으로 경제가 추락했던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재정건전성이 복지 확대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재정이 건전하다고 해서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 필연적으로 도덕적 타락과 이에 따른 경제 성장의 추락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올리면 더 행복해진다는 ‘고부담-고복지’도 틀린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복지 확대로 복지 수혜자 측에서 생겨날 일할 의욕, 책임감 등 도덕의 손상과 다른 한편으론 조세 부담으로 기업의 투자 위축, 일할 의욕 상실로 인해 성장이 저하되면서 실업과 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재정 낭비도 복지국가의 심각한 문제다. 보편적 복지는 돈을 먹는 하마와 같다. 정부의 방대한 복지예산은 단순히 나눠 먹을 눈먼 돈일 뿐이다. 복지국가는 그래서 ‘재정사회주의’나 다름없다. 복지예산은 주인 없는 돈이기 때문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복지예산의 남용과 낭비를 뜻하는 ‘공유의 비극’은 그래서 당연한 결과다.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가 결국 복지 수준을 낮춘다는 ‘복지의 역설’은 복지국가 현실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선택적 복지의 부담이 낮다고 해서 시민들이 누릴 복지 수준이 낮아지는 게 아니다. 개개인이 시장에 의존해 복지를 증진하려는 강력한 의욕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무의탁 노인, 결손가정, 당장 먹을 게 없는 어려운 가정을 돕는 선택적 복지여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복지를 시장의 자생적 힘에 의존하도록 규제를 풀고 정부 지출을 줄이는 일이 복지 증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 보편적 복지가 치명적인 이유
세금과 반비례 '복지의 역설'복지 수준을 올리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조세·복지 연계론’에서 복지 증진의 길은 보편적 복지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틀렸다. 세금이 높으면 복지도 떨어진다는 ‘복지의 역설’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북유럽 국가는 의료서비스 재원의 85% 이상을 조세수입에 의존하는데 미국은 45% 정도다. 그렇다고 미국의 1인당 의료서비스가 유럽보다 낮다고 말할 수 없다. 즉,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서비스 지출(개인지출과 공공지출의 합)은 14%로, 유럽 국가 평균(9%)보다 높다. 영국(79.9%)은 독일(75.8%)보다도 조세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지만 의료서비스 지출은 GDP 대비 8% 미만으로 독일(11%)보다 낮다.
유럽 모델의 대표격인 스웨덴 국민이 1인당 누리는 의료서비스 가치는 연 2200달러인 데 비해 미국은 1인당 4800달러로 두 배 이상이다. 미국인은 소비의 3분의 2 이상을 교육, 의료서비스, 돌봄서비스, 기타 복지서비스에 할애한다. 스웨덴은 겨우 3분의 1이다. 미국인이 복지 소비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수치다. 결론적으로 유럽인은 복지 재원으로 세금을 많이 내지만 세금을 적게 내는 미국인보다 복지서비스를 적게 누린다. 따라서 세금을 많이 내면 개인이 누리는 복지도 그만큼 많을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 옳지 않다고 할수 있다.흥미로운 건 스위스의 사례다. 스위스는 조세 부담률이 비교적 낮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의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다. 선택적 복지의 정신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스웨덴의 생활 수준이 미국의 가장 가난한 6번째 주에 해당한다는, 그래서 선택적 복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미국 케이토연구소의 보고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70년 경제적 위상이 세계 3위였던 덴마크는 정부의 복지 확대가 본격화한 2003년에는 17위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조세 부담을 줄인 아일랜드의 경제적 위상이 22위에서 4위로 급상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롤스의 '분배적 복지' 따랐던 유럽, 처참한 실패 후 친시장 개혁 나서
경제적 자유 커지자 빈곤층 줄어…하이에크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자였고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존 롤스(1921~2002)는 서민층을 대변한 20세기 가장 탁월한 철학자였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롤스는 빚을 얻어 잔치를 벌였고, 하이에크는 그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두 석학은 복지 증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복지를 분배정의와 연결해 복지국가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게 롤스의 사상이다. 롤스는 경제적 자유를 도외시했다. 사회 번영을 위해서라면 사유재산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경제를 계획할 인간의 지적 능력을 신뢰한 롤스는 자유시장은 ‘서민층’에게 불리하다며 평등을 위한 정부의 분배적 복지 확대를 주장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해 비판적인 하이에크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 경제자유 없이는 시민적 자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시장에서만이 서민층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혼자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선택적 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사상이 서민층의 삶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가. 사유재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게 롤스 사상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하이에크는 사유재산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만이 경제적 번영은 물론 시민적 자유도 번성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처럼 롤스는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도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걸 또렷하게 입증한 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불가능하고 결국 망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 하이에크가 아니던가.
분배적 복지 확대를 통해 서민층의 삶을 개선하려고 한 롤스의 노력은 성공했는가. 1970~80년대 유럽의 복지국가가 그의 열정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했다. 관대한 실업급여, 친(親)노동정책 등 정부를 통해 분배적 복지를 향상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사회는 10% 이상의 고실업, 2% 내외의 저성장에 허덕였다. 빈곤층 증가가 복지국가의 결과였다. 빈곤자를 빈곤에서 탈출시키지 못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난 유럽의 복지국가는 2000년대 들어 친시장 개혁에 나섰다. 스웨덴은 복지의 수혜 수준과 기간을 대폭 줄였다. 연금·의료 부문도 일부 민영화했다. 정부 지출과 부채를 줄이고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부유세는 철폐했다. 독일 역시 실업자의 권리 축소, 실업수당 수령 기간 단축 등 개혁을 단행했다. 정부 지출을 줄인 것이다. 법인세도 39%에서 30%로 인하했다.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실업률은 1990년대 11%에서 2010년대 5% 내외로 떨어졌다. 경제도 3% 내외로 성장했다. 빈곤층은 줄었고 소득은 늘었다. 롤스가 중시한 서민층의 복지는 하이에크가 중시한 경제적 자유를 통해서만이 효과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을 유럽 복지국가의 친시장 선회가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