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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시 교양 교육으로!人間/대학생이알아야할것 2008. 8. 25. 00:28
10. 열번째, 다시 교양 교육으로!
■ 지난 여름, 무역 센터에서
이번 방학 중에 한국 무역 센터(KOEX)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SICAF 95)」을 관람하였다. 만화와 만화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 호에서 나는 “각종 전시회, 박물관, 미술관에는 자주 가는가?”라고 질문하였다. 각종 전시회의 참관은 첫째로, 돈만으로는 불가능한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학 생활의 장점인 풍부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바란다. 둘째로, 각종 전시회나 전람회의 참관은 경험과 견문을 통해 교양과 양식을 길러 준다.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의 추태도 결국 교양과 양식이 부족한 탓이며, 진정한 세계화에는 세계 시민의 교양과 양식이 필요하다. 셋째,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재의 트렌드에서 볼 때, 이는 매우 현실적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는 군사력, 경제력, 토지와 인구 등이 국력의 척도로서 중요했지만, 여러분들이 활동할 21세기에는 기술, 정보, 문화 등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만화 산업에서 세계 3위의 외형적 규모에도 불구하고 만화 영화의 단순 하청 작업만을 담당한다. 자본의 부족과 사회적 몰이해의 탓도 있겠지만, 캐릭터(주인공)의 부재나 아이디어의 빈곤이 더 큰 원인이 되므로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문제가 된다. 월트 디즈니와 데츠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처럼,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만화가는 학자나 경제인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결국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구체적 개인의 문화적 수준이 결정적인데, 여기서 새삼스레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
■ 다시 한 번 대중문화를 생각하며
나는 이미 「대중문화의 바다를 헤엄치기 위하여」(『지성과 패기』1994년 9, 10월호)에서 대중문화의 이해와 수용에 관한 안내를 하였다. 몇 가지를 보완한다. 만화에 관한 만화 『만화의 이해』(아름드리, 1995)는 만화의 역사만이 아니라, 만화라는 예술 형식과 그 가능성, 제작법 등을 살피고 있다. 그리하여 만화의 정의, 기본 요소, 만화 언어의 수용, 작업 방식, 창작 일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만화를 가치 있는 매체로 파악하면서 이를 설득력 있고 철저하게 해부하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각 혁명의 주요한 측면을 조망한다. 만화는 물론 매체와 예술 일반에 대한 이해에도 일조를 할 것이다. 문화 산업으로서 만화(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고조된 관심 때문에 『시사저널』(289호, 1995년 5월 11일자), 『출판저널』(172호, 1995년 6월 20일자), 『뉴스메이커』(137호, 1995년 8월 17일자) 등에서 만화 특집을 다루었는데, 『출판저널』의 특집이 교양 만화를 소개하여 유용하다. 단행본의 형태이지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서출판 대원, 1995)를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도 기쁜 일이다. 다음으로‘대중 영화와 비디오의 메시지 이해를 돕는 가이드 북’인 알랜 맥도날드의 『영화, 보는 즐거움, 읽는 기쁨』(선한이웃, 1995)은 쉬운 필치로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 언어를 이론적 방법으로 관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래의 성공작인 25편의 영화를 전쟁 영화, 우주 영화, 공포 영화, 애정 영화 등의 범주에 의해 선택하고 나란히 비교하면서,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주장하고 설득한다. 저자의 기독교적 근본 입장이 약점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이하 TV로 약칭)에 대한 책을 하나 소개한다. 오카무라 레이메이의 『TV가 바뀐다 사람이 바뀐다』(지영사, 1994). ‘텔레비전의 내일’이라는 원제가 말해 주듯 TV의 영향력이나 멀티미디어로서의 TV 등을 다룬, 한 마디로 ‘TV의 문화학’이다. 폭넓은 시간과 공간에서 TV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여담이지만, 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시청하며, 몇 년 전 상영되었던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이래 근래는 『X-파일』을 특히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X-파일』이 매스컴이나 이른바 대중문화 비평가에 의해 그리 언급되지 않는 점이 매우 의아한데, 『산해경』이나 『퇴마록』과 비교하면서 시청하면 어떨까? TV도 얼마든지 훌륭한 내용을 전할 수 있다는 사례로서 우선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登頂)의 발자취』(범양사, 1985)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학원사, 1981), 『식물의 사생활』(까치)을 지적한다. 훌륭한 내용과 새로운 전망이 뛰어난 시각 자료에 의해 제시되는 이 책들의 필독을 강권(?)한다. 반면에, 책이면서 다큐멘터리의 구실을 하는 것도 있다. 바로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21세기를 앞두고 인류의 문화 유산을 총망라한다는 취지에서 펴내는 ‘디스커버리 총서’를 번역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시공사, 1995)가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현대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인류 문명의 역사와 가치를 영상 시대에 맞게 그림, 사진 등을 이용해 압축된 정보와 함께 싣고 있다.『디스커버리 총서』가 인류 문명의 길잡이라면, 대원사의『빛깔 있는 책들』은 주로 한국의 (전통) 문화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빛깔있는 책들』과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문연, 1990)은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최근 출간된 주강현의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 2』(한겨레신문사) 또한 일독할 가치가 있다.
끝으로, 문화생활에 관해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주간지 『씨티라이프』 이외에도 『씨네 21』과 『Seoul Eye』를 소개한다. 전자는 영화와 비디오를 중심으로 만화, 게임 등 영상 문화 전반을 다루며, 후자는 각종 행사를 중심으로 대중문화를 폭넓게 다루는데 특히 분야별 서적 안내가 유용하다.
■ 인문적 교양의 근원으로서 문학(文學)
멀티미디어 시대라 해도 그 근간에는 언어와 활자가 자리한다. 예컨대 『만화의 이해』는 만화에 대한 자기반성이지만, 이 반성은 상당 부분 언어와 활자에 의존한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반성으로서 『플레이어』가 거둔 실패나, 또는 몇 년 전 조운학에 의해 행해진 만화의 자기반성과 검토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영상 매체의 경우 자기 반성적 기능이 약하다. 인류 문명의 진화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겠으나, 언어와 활자가 지닌 자기 반성적 기능은 아직 거의 유일하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언어를 주된 영역으로 하는 문학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앞서 고급 교양물의 독서를 잠시 언급하겠다.
내가 말하는 교양물이란 구체적 예를 든다면, 여행기(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2』)나 탐험기(다윈의 『비이글호 항해기』), 일기, 서간문,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곤충기』, 『동물기』는 물론 로렌츠의 『솔로몬왕의 반지』나『개가 인간으로 보인다』, 『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 등), 사진집이나 회고록, 자서전, 평전, 그리고 무엇보다 흔히 수필이라 언급되는 산문의 세계이다. 아쉽게도 이는 우리 출판계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인데, 결국 빈약한 필자(역자)층과 얇팍한 독자층이 야합한 결과이다. 이 문제는 접어두고 문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소개한다.
먼저,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 1995)를 권하고 싶다.『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오랜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 문학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물 창조’, ‘사건 배열’ 등의 실전 작법보다는 창작 행위로서의 소설 쓰기에서 작가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생명에의 외경,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각과 맑은 감성, 그리고 진정한 창조를 위한 고독과 인내를 강조한다.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가 오랜 창작 경험을 지닌 대가의 육성을 전한다면,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89)는 자상한 교육자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첫째, 문학이 삶에서 구할 수 있는 ‘낙(樂)’의 하나이기에 문학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 둘째, 친근한 우리 문학에서 사례를 구하여 문학이 비근하고 예사로우면서도 신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이 모국어 내지 제1언어에 대한 민감성에서 유래하며 ‘이해’와 ‘연구’는 밀접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입장은 많은 시사를 준다. 시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하면서 동시에 친절한 답변인, 같은 저자의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시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시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향수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특히 시를 읽는 경험과 삶에 대한 경험, 그리고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잡다한 풍문과 미신에 사로잡혀 시를 읽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직접 시를 정독하여 괜찮은 시를 스스로 가려 내는 주체적 독자가 되라고 충고한다. 마지막으로, 도정일의 문학·문화·시대에 대한 에세이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민음사, 1994)를 필독서로 권한다. 「시대의 시」, 「기억을 위하여」, 「혼돈 시대의 소설」, 「왜 문학인가」의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명석하고도 예리한 분석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볼 수 있다. 이론은 성행하지만 작품의 올바른 이해에는 무용한 오늘날 문학 연구의 현상에서 이 책은 예외적으로 인문학적 교양의 성취를 과시한다.
■ 소금은 달다 : 고전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소금에는 음식의 쓴 맛을 없애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설탕에 소금이 들어가면 더 달다는 것은 예로부터의 지혜였다. 고전(古典)이란 인류 문명의 유산이며 인간의 예지에 의한 산물이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苦戰]이란 어쩌면 그 즐거움을 배가하는 소 금과 같은 것이 아닐까? 따라서 동서고금을 통해 대학 교육의 중심에 고전의 연구가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에서는 고전 연구의 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른바 경학(經學)의 부재이다. 하지만 해방 50주년이 되는 금년에 고전 연구의 각 유형을 보여 주는 책이 나왔음은 매 우 기쁜 일이다. 그것이 바로 『박홍규 전집』(민음사, 1995), 『김충열 교수의 노장 철학 강의』(예문서원, 1995), 『도올 선생 중용 강의』(통나무, 1995)이다. 『박홍규 전집』은 생전의 논문을 주로 모은 『희랍 철학 논고』(전집 1)와 『형이상학 강의 1』(전집 2)이 먼저 나왔다. 플라톤과 베르그송을 중심으로 방대한 학문과 사상 체계를 형성한 사상가이자 고전학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형이상학 강의 1』에 수록된 「고별 강연」과 「그 검토」가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김우창 전집』(민음사)과 『박홍규 전집』이야말로 서구의 인문학을 수용한 이래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한편, 『김충열 교수의 노장 철학 강의』는 노자(老子)라는 사람과 『노자』, 장자(莊子)라는 사람과 『장자』에서 시작하여 반 문화의 기치를 높이 든 노자의 도(道), 덕(德), 무위(無爲) 등 중심 사상과 그 이상, 아울러 비판 철학자로서의 장자의 핵심 철학과 예술적 세계관까지 차분하게 들려준다. 소극적, 부정적으로 파악되어 온 노장 철학을 중국 철학에 대한 오랜 세월의 성취에 의해 적극적,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노장 철학의 훌륭한 강의이자 『노자』와 『장자』라는 고전의 독법에 관한 뛰어난 안내서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도올 선생 중용 강의(상권)』는 중용이 우리의 구체적 삶의 자세에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서구 근세의 계몽주의를 극복하는 인류 문명의 일대 패러다임 변환을 가능케 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다양한 주제를 재미있는 예와 함께 전달하는데, 저자의 고전 해석은 폭넓은 지식만큼이나 해박하고 다양한 관심 분야만큼이나 화려하며, 또한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저술 양식이나 배경, 동기는 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이들을 통해 고전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엿볼 수 있고 배우게 될 것이다.
【지성과 패기 1995년 9·10월호에서】